독서일기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2010/02/09 01:18 by Brett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 | 닉 혼비 지음 |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이것이야말로, '닉 혼비니까' 산 책.
책 제목이 너무 구리지 않은가.
이건 뭐, '누구누구의 -책읽기'라는 어투는 뭔가 자기 계발서 같고,
'런던스타일'이란 수식어는 언제부터인가 실속없이 행해지는 '유럽8개국10박 11일 투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혼비'니까.
그리고 역시 혼비!

이 책은 The Believer라는 잡지에 혼비가 투고한 내용을 모은 것인데,
그 내용은 모두 책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혼비는 역시 그것들을 어렵지 않지만 비판적으로,
캐쥬얼하게, 그리고 애정어리게 담아내고 있다.

사실 전체 300여쪽에서 이제 50여쪽을 읽고 있는 중인데도
이미 내게 여러 가지 즐거움을 주고 있어서.
벌써 책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쓴다.

책머리에서부터 혼비는 특유의 그 말투로 말한다.
'안 읽히는 책을 읽느니, 재미있는 무엇이든(!) 읽어라'

내가 아는 것은 읽느라 힘들어 눈물이 나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며, 다음번 선택 기회가 왔을 때 책보다는 <빅 브라더>(리얼리티 TV쇼)를 선택할 것이다.(p.13)

당연히 그런 생각부터가 맘에 들었고,
나는 또 원래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안에 소개된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또 혼비의 글에서 빠질 수 없는 유머.
아무리 잘 모르는 책에 대한 이야기라 하여도,
절대 지루하지 않다.
쉼없이 낄낄대는 실성한 듯한 나를 자꾸 지하철에서 발견하게 된다.

특히 축구광인 닉 혼비의 이 까다로운 편견(?)과 옹고집(?)에서,
속으로 '이그! 이인간!!'이러면서도,
나름 야구팬이자 음악팬인 나 역시 이런 잘난척을 하리라고 공감했다.

조이 헬러의 <스캔들에 관한 비망록>은 15살짜리 학생과 바람을 피우는 40대 도예교사의 이야기인데, 내내 잘 진행되더니 갑자기 인물 가운데 하나가 축구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동료 교사에게, 아스날 경기를 보러 갔었는데 "3-0으로 아스날이 리버풀에게 승리했다"고 말한다.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손 치면, 그건 바로 축구 경기가 끝난 다음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단한 게 아닌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건 내 전문 분야다. 그리고 아스탈 축구클럽의 역사와 영어의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도 "3-0으로 아스날이 리버풀에게 승리했다"고 말하는 일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겼다", "꺾었다", "해치웠다", "본때를 보여줬다", "대파했다", "눌렀다" 등등은 가능하다. 그러나 "승리했다"는 절대불가다. 그리고 그 순간 느낀 당혹감과 불신으로 인해 다른 것들에도 의문을 느끼게 되었고, 소설 전체의 뼈대가 약간 흔들리기 시작했다..(중략)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내가 이런 방면으로 까다롭다. 아스날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아는가? 내가 반감을 느낀 것은 그럴 성싶지 않은 말투뿐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스코어였다. 아스날은 1991년 이래 하이버리 구장에서 리버풀을 3-0으로 꺾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저 가련한 작가에게 무슨 승산이 있으랴?(p.36-37)

상황이 이쯤되다 보니, 나는 다시 한 번 이 한국어 제목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머리에'에서 거론된 원제는 "Polysyllabic Spree"인데, 제목을 보니 일단 한국어 번역 자체가 참 난감하긴 하다.
옮긴이 역에서 이 제목을 [다음절어가 오가는 요란한 모임]으로 번역했는데,
이게 뭐야!라고 투덜거리며 결국 우리의 만능친구 위키피디아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제목은 밴드명에서 따온 것이란다. The Polyphonic Spree라는.
그리고 친절한 위키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닉 혼비가 이 칼럼을 투고한 잡지(The Believer)의 편집위원들은
"all dressed in white robes and smiling maniacally, sort of like a literary equivalent of the Polyphonic Spree."라고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어판을 보니
"그들은 '다음절어를 주고받으며 요란하게 떠드는 모임'이라는 이름을 문자 그대로 바꾸어놓은 것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미친 듯이 미소를 지어대는 열두 명의 약간 섬뜩한 남녀들이었다."라는 정도로 번역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번역은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밴드명을 고유명사로 썼다면 the를 대문자로 써야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좀 애매하기도 하다만.
어찌되었던 저기서는 '다음절의'인 polysyllabic이 아니라 polyphonic이니
'다성 음악의, 다(多)음성의'이 바른 뜻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밴드명을 역자주 정도로 달아주어 좀더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잘은 몰라도 차라리 뉘앙스적인 면에서는 걍 영어로 보는게 더 와닿는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그 느낌이 너무 단조롭달까.
어찌되었던 그래서 찾아본 저 이름도 요상한 밴드의 모습은 이렇다.

아. 밴드의 모습을 보고 나니, 그 잡지의 편집자들이 어떤 사람이란 건지 알겠다.
뭔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지-_-:
(물론 음악을 안들어봤으니, 걍 피상적인 면만 보자면.)
어쨋든 이런 표현마저 혼비스럽다는.
그래서 여러모로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아무래도 나중에 영어판도 꼭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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