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지음 2010/03/03 13:42 by Brett

지식의 미술관 |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굉장히 오랜만에 미술 관련 서적을 읽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미술 서적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공부를 하면서 머리가 한쪽으로 굳어가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어느 정도 관심을 끊고 지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주헌씨의 책은 정말 재미있다.
미술에 아주 작은 관심만 있다 한들,
그가 풀어 놓는 수많은 이야기의 환상 속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느 새, 책에 수록된 도록을 뚫어져라 보고 또 보는 일이 생긴다.
물론 뭘 알고 보냐고 한다면, 여전히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많은 의미와 이야기, 배경을 가진 여러 작품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는 나도 그림을 볼 때, 그런 의미를 스스로 엮어나갈 수 있는 관객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30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미술 전반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수록해 놓은 것이다.
기법, 사조, 주제, 화풍이나 시대상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모든 소재가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 서로 다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어지는 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미술 속에 반영된 어떤 권력관계나 이데올로기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인의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은 '남성'만을 지칭한 것이고,
따라서 누드의 시초는 남성의 육체미에서 찾을 수 있다.
미숙한 인간, 남성으로 가지 못한 인간이라는 미완성의 존재였던 '여성'은 벗을 자격도 없었다고.
그러다가 '여성' 누드는 차츰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된, 따라서 그들의 눈에 유혹적인, 성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단다.

비너스의 탄생 | 카베날
일반적인 비너스들과 달리 서서 탄생하지 않고 누워서 탄생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에로티시즘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화가의 배려다. 누웠다고는 하나 따지고 보면 상체와 하체를 엇갈리게 뒤틀어 매우 불편한 포즈인데, 굳이 그 불편을 감내한 것은 그렇게 해야 자신의 몸이 보다 더 매력적이고 관능적으로 보이리라는 사실을 비너스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p.108)

비너스의 탄생 | 보티첼리
비너스와 같은 여성 누드 작품을 보면 위의 그림과 같은 포즈를 많이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자세를 '정숙한 비너스'라고 부른다고 한단다. 이런 것 역시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수동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반영은 오리엔탈리즘에서도 마찬가지의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오리엔트를 접하면서,
미개한 오리엔트인을 우월한 자신들이 지배하고 교화해야 한다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결처분 | 르노
동방에서 절대 권력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자는 이처럼 늘 무자비하게 처단된다. 인권이나 법,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어쩌면 이는 19세기 유럽이 겪은 스스로의 잔인성 혹은 가학적 욕망을 날것 그대로 투사한 장면일 수 있다.(p.216)

한편, 이렇게 미술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권력자들이었다.
제3제국의 미술에서 소개된 이야기는 히틀러가 당 선전용으로 미술가들을 이용한 사실이었다.
그들의 미술에서는 영웅주의를 강조하고, 당연히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다른 미술(특히 추상미술, 전위미술)은 퇴폐미술로 간주하였다.

머리를 그려넣은 아르노 브레커의 '복수자' | 바우마이스터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1941년부터 공식 전시가 금지된 '퇴폐미술가'였다. 이 같은 박해 상황에서도 그는 특유의 낙천성을 잃지 않았는데, <위대한 독일미술> 전에 들렀다가 히틀러가 좋아한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 등의 작품 엽서를 구입했다. 브레커의 '복수자' 사진에는 조각의 은밀한 부위에 만화풍의 사람 얼굴을 그려 넣었다. 제아무리 억압해도 예술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p.248)

그리고 또 미술을 이용한 권력층은 다름 아닌 CIA란다!
사실 이 부분은 몰랐던 이야기라서, 좀 충격적이었다.
추상표현주의 스타 작가인 잭슨 폴록의 작품이 자유, 순수를 보여준다기 보다 자유'주의'를 보여준다니.
냉전시대의 자유주의를 선전하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듯한 구상화보다는 추상표현주의가 딱이긴했겠지만.
실제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진보적 행보와 상관없이 CIA에서 이 사조를 확실하게 밀어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엄청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것은 다음에 소개하도록 하자.

읽으면서 클림트의 에로티시즘, 빅토리안 낭만주의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겼고,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마야의 스페인 내전은 언제나 아픈 마음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화가와 정신병 및 자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다시금 예술가들이 얼마나 힘든 삶은 감내하는 인간들인지 알게 해 주었다.

이런 것을 다 알면 무엇에 좋냐? 고 물으신다면, 이주헌씨의 서문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누누이 이야기했듯, 단순히 지식의 양이 감상자의 감상 능력과 안목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직관을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다시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지식과 경험은 구슬이고 직관은 꿰는 실이기 때문이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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